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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에 대한 상세정보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
작성자 언론사 등록일 2024.05.24

당신은 얼죽아인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들은 뜨겁거나 차가운 두 가지 중 하나를 주문한다. 하지만 이를 평균 내면, 한국인은 40도 정도의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를 좋아한다는 말도 안 되는 결과가 도출된다. 이 떨떠름한 아메리카노는 어디서 온 것일까?

한국인의 삶은 고단하다. ‘가장 잘 잡아야 하는 줄은 탯줄이라는 자조적인 말이 있을 정도로, 태어나서부터 경쟁의 서막이 오른다. 학벌, 능력, 외모를 포함한 모든 부분에서 정해진 기준을 따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입사, 결혼, 출산도 적당한 나이에 적절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 전형적인 길을 걷지 못한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형벌은 가혹하다. ‘걱정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비교와 평가는 수치심과 자신감 상실을 불러온다. 더욱 기고만장해서 훈계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얼른 주눅 들고 눈치라도 봐야 끝날 것 같다.

중간만 하자, 적당히만 하자라는 말이 일상생활에서도 흔하게 쓰이는 만큼 우리는 평균 정도는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평균이 언제나 전체를 대변할까? 예를 들어, 소득의 평균값은 상위 몇 퍼센트의 고소득자가 전체를 끌어올리는 효과를 내어 실제 중간 소득층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 서울의 평균 집값을 생각해보자. 몇몇 초고가 주택이 평균을 높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수준의 집을 살 수 없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평균은 종종 극단적인 값들에 의해 영향을 받아 실제 다수의 경험과 동떨어진 결과를 낳는다. 평균이 현실을 왜곡했다.

우리가 생각하는 평균과 그 기준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도 알 필요가 있다. 부모님 세대가 그토록 소망하는 대기업 취업은 전체의 16%에 불과하며, 결혼 적령기인 30대 초중반 사람들이 집을 소유하고 있을 확률은 20%가 되지 않는다. 이 통계들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평균적인' 삶이 실제로 얼마나 달성하기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목표를 마치 당연히 이루어야 할 것으로 여기고 스스로를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평균적인 삶'이 실제로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은 크게 변했다. 경제 전망서 트렌드 코리아에서 제시한 평균 실종이라는 개념은 사회의 다양한 측면에서 평균이 사라지고, 대신 개별성과 특수성이 중요해지는 현상을 설명한다. 집단을 대표하는 평균값이 무의미해지고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지던 전형성이 사라졌다. 과거의 평균적인 경로를 따르려는 시도가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평균 실종은 다양성의 다각화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양극화를 내포하기도 한다. 특히 한국은 정규분포를 쫓는 무난한 삶을 추구하기 위해 경쟁하는데, 정규분포 자체가 의미 없어져 버리면 허상을 좇는 것과 다를 게 없다. 평균이 실종된 사회에서는 모든 개인의 삶이 평균을 따르기보다는 각자의 특성과 상황에 맞게 다르게 흘러가게 된다. 이로 인해 사람들은 과거에 비해 더욱 다양한 삶의 형태를 받아들이게 되었지만, 동시에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되기도 한다.

32살 한국인 여성의 이미지를 상상해 보자. 어떤 직업으로 돈을 벌며 결혼을 준비하거나 아이를 키우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 나이에도 학교 수업을 듣고 교내 언론사 기자로서 마감 임박 기사 작성을 위해 머리카락을 뜯고 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경쟁이 치열하고, 정해진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압박이 강하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압박에서 벗어나, 더 다양한 삶의 형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각자의 삶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서로에게 조금 더 관대해지면 어떨까.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를 먹고 싶은 게 아니라면 말이다.

_한언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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