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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노란리본, 없어도 좋아! 겨우 난봉산이니까!에 대한 상세정보
[14면] 노란리본, 없어도 좋아! 겨우 난봉산이니까!
작성자 언론사 등록일 2023.03.15

48호관 앞, 눈물방울 조각 옆에 나무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은 어디로 통할까? 강의시간에 교수님을 통해 우리대학 뒤편에 있는 산이 난봉산이다라고 들은 바 있다. 어감이 좀 우스울 수 있지만 어엿한 산성(山城)까지 있는 산이다. 고려시대 장군이었던 박난봉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시험을 앞둔 지난달 19일 토요일 오후, 평상복 차림으로 뚜껑달린 컵에 물만 반쯤 채워 그 샛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십여 미터쯤 이어지던 계단은 곧 잡초와 얇은 대나무 숲에 가려 없어졌다. 그리고 무덤이 한 기, 두 기 보이더니 길이 사라졌다. 바닥에는 떨어진 밤송이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하나, 막막하여 둘러봤다. 무덤 뒤로 병풍처럼 깎인 흙단에 빽빽한 대나무 중 한두 그루가 꺾여 불쑥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 앞에 갔던 사람이 잡고 올라가면서 만들어 놓은 흔적일 것이다. 반가운 마음에 그것을 잡고 올라갔지만 곧 더 이상 나갈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대나무 숲이 나왔다. 좀 휑한 곳을 찾아 요리조리 발을 디뎌봤지만 낫이나 전지가위가 없이는 불가능했다. 길이 끊어진 것이다. 벌써 목이 말라 컵을 꺼내 한 모금 꿀꺽! 크게 마시고 뒤돌아섰다. 흙덩이가 무너져 운동화 신은 발이 사정없이 죽 미끄러져 가며 두 번째 무덤이 있던 자리까지 돌아왔다. 이제 어찌해야 하나, 문득 지리산을 종주했던 기억이 떠오르며 여기 어디에 노란 리본이 묶여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국립공원이라 관리가 잘 돼 있다고 해도, 초입만 벗어나면 산은 복잡해진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갈림길이 나왔는데 그때마다 방향을 알려준 것은 앞사람이 이정표로 묶어놓은 노란 리본이었다. 정말 이 길로 가면 등산로가 이어질까? 대피소를 찾아갈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 때도 있었지만 노란 리본은 한 번도 나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겨우 432m짜리 난봉산, 중턱에 이르기도 전에 노란 리본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날, 게으르고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는 기자가 등산을 한 이유는 막연한 불안함 때문이었다. 한 해가 벌써 다 가고 겨울이 온다는, 해 놓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나는 시간만 보내고 있는 것 같다는. 무엇인가, 누군가 한쪽을 가리키고 있어서 그 길만 따라가면 틀리지 않고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확신을 주었으면……. 많은 학우들은 그 길이 스펙 쌓기라고 생각해서 토익점수를 올리고, 자격증을 따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불안함에 스펙부터 쌓고 보자는 것은 난봉산에 오르면서 길을 잃을까봐 노란 리본을 찾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행동의 기준을 정하고 그에 따라 미래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지레 겁을 먹고 안전하다고 알려진 곳에 줄서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어진 많은 기회에서 눈을 감아 버렸던 것은 아닐까?우여곡절 끝에 이정표를 발견해 길을 찾고 정상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곳은 이정표를 따라오지 않았다면 믿기 어려울 만큼 초라했다. 벤치에 앉아 남은 물을 다 마시고 3시간여의 등산을 마친 후 평온한 학교로 돌아왔다. ‘정상이라면 적어도 사방이 확 트여있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계속 떠올랐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정상으로 알았던 그곳은 정상이 아니었다. 게다가 뒤늦게 16호관 옆에 산으로 올라가는 흙 계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헤맨 곳을 가늠해 보니 48호관과 16호관 사이로 생각됐다. 실소가 나왔다. 하지만 아주 헛일을 한 것 같지는 않다. 이 가을, 당신이 얼마나 안전한지 불안할 때 난봉산에 올라보는 것은 어떨까. 여기서는 노란 리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주위를 둘러보며 어디에 비탈이 졌는지, 풀이 누웠는지, 흙이 드러났는지 보며 직접 길을 찾아도 된다. 심지어 새로 길을 낼 수도 있다. 우리가 있는 여기는 기껏해야 난봉산일뿐이니까


글_김의선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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