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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면] 자유와 권리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 설국열차 그리고 브이 포 벤데타에 대한 상세정보
[14면] 자유와 권리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 설국열차 그리고 브이 포 벤데타
작성자 언론사 등록일 2023.03.15

새로운 빙하기를 맞아 인류는 멸종에 직면하게 되고, 소수의 인간만이 설국(雪國)열차라는 노아의 방주에 탑승한다. 지극히 제한적인, 극도로 통제된 설국은 우리의 사회를 함축한다. 뿐만 아니라 꼬리칸부터 엔진칸까지의 열차는 각각 인류의 역사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다.영화를 보고난 후, 우리는 고민에 빠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통제된 사회에서 적당한 편안함과 안정감을 누릴 것인가? 아니면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더 나은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 닫힌 문을 열 것인가? 이것은 비단 꼬리칸 사람들만의 문제 아니다. 생각해보자. 부모님께서 용돈을 내가 원하는 대로 무한정 주셔서 풍족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옷이나 화장품 등을 부모님이 사라는 것만 사야 된다면 어떨까? 이것은 우리에게 생각 이상의 깊은 고민거리로 다가 올 것이다.영화에서는 두 개의 문이 등장한다. 하나는 꼬리칸으로부터의 자유를 상징하는, 꼬리칸의 리더인 커티스의 문. 또 다른 하나는 설국열차로부터의 자유를 위한, 열차설계자 남궁민수의 문이다. 이들의 두 문은 묘하게 다르면서도 자유라는 종착점은 같다. 설국열차는 평안함이라는 햇볕아래 통제라는 그늘이 자유라는 권리를 덮고 있다. 여러분은 평안함이란 이름으로 잠가버린 자유의 문을 열 것인가?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2040년 영국. 권력을 가진 자들과 피부색, 성적 취향, 정치적 성향, 종교 등이 다른 자들은 정신집중캠프에 끌려간 후 사라진다. 거리에는 온통 감시카메라와 녹음장치가 설치되어 있고, 심지어 통금시간까지 존재한다. 설국열차와는 또 다른 느낌의 통제가 나타난다. 마치 조지오웰의 소설 와 흡사하다. 소름끼칠 정도로 우리나라의 유신정권 시기와도 상당부분 일치한다. 영화에서 정부는 질서와 평화를 약속했다. 그 대가로 정부가 요구한 것은 권력. 그리고 그에 따라 침묵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생각과 대화는 곧 정부 권력의 약화를 불러오기 때문에, 권력을 유지시키기 위해선 국민들을 통제하고 침묵시키는 것이 반드시 필요했다. 다행히도 국민들은 주인의 매가 두려운 개 마냥 멍하니 국가가 이끄는 곳으로 졸졸졸 따라갔다. 하지만 이에 맞서는 단 하나의 존재가 있었으니, 다름 아닌 정체불명의 주인공 V가 되겠다. 그는 방송국에 잠입한 뒤, TV연설에서 두려움으로 인해 무기력해진 국민들을 향해 이런 말을 한다. “어떻게 이렇게 된 걸까요? 대체 누구 책임일까요? 하지만 누가 죄인인지 알고 싶으면 거울을 보십시오.” 비록 영화에서는 국민들의 무관심이 통제에 의한 것 이지만, 이를 떠나 정치적 무관심은 현대 민주주의에서 심각한 문제점으로 제기되고 있다. 오히려 영화에서 보여주는 통제된 무관심이야 말로 이런 문제점의 근본이 아닐까 싶다. 마치 내 말에 수긍이라도 하듯, 영화는 이 가려운 부분을 조심스레 긁어준다. 국민들은 감염된 좀비가 다시 인간으로 회복되듯, 서서히 이건 뭔가 잘 못 됐다!’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약속의 날 115, 그들은 권력에 대한 두려움, 통제라는 안식처로부터 벗어나는 두려움을 깨버린다. 그렇다. 영화에 나오는 말처럼, 애초에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는 세계적으로 보편화된 제도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과 참여가 없다면, 사회는 파시즘이나 권위주의 정부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와 로부터 우리는 능동성적극성을 엿볼 수 있다. 잠긴 설국열차의 문을 여는 것도, 약속의 날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것도 스스로의 선택이다.


_ 임태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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