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호, 「전부였던 사람이 떠나갔을 때 태연히 밥을 먹기도 했다」, 필름, 2018
그날도 역시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엄지손가락을 위로 까딱까딱 해가며 소셜네트워크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글 하 나를 읽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거든. 그 리고 가장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 작가를 독자 로서 사모했다. 작가 ‘박근호’의 첫 문집, 「전부였던 사람이 떠나갔을 때 태연히 밥을 먹기도 했다」. 작가가 약 3년 전에 썼던 문장이 제목으로 재탄생했 다. 총 74개의 시, 산문 등이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여러 가지 감정들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파슬파슬한 종이 위에 녹여 냈다. 대부분 부드럽고 모나지 않은 단어들로 쓰여졌기 때문에 책장 을 술술 넘기며 조용히 음미할 수 있었다. 혹여나 나의 서평을 읽은 후 작가에게 관심이 생긴 학우가 있다면, 꼭 작가의 손글씨로 써진 작품들을 찾아보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 또박또박하진 않는 데 이상하게 가독성이 좋고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묘한 글씨체 를 가졌기 때문이다. 나도 그것에 반하지 않았는가. 문집에 실린 모든 작품이 따뜻하지만 유독 내 마음에 좀 더 짙은 불 씨를 남긴 글이 3개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부 ‘이별’에 대해서 이 야기하는 글인데,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시 사랑한다면 /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 너무 가까이 닿은 살에 물집이 없도록 /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걸을 것 이다 (중략) 잊히지 않을 것 같던 사람도 결국 흐려질테니 / 당신이 떠난다고 울지 않겠다는 뜻이다” _만약에, P92~93 “우리는 정말 맞지 않았고 / 인연 또한 아니었다는 말을 뱉는 / 이별 한 당신에게 묻습니다 / 그럼 그때 / 서로를 바라보며 / 아이처럼 웃 던 미소는 무엇입니까” _그때의 그 눈빛, P98 “당신이 떠나고 배웠다 / 사랑하는 사이에도 / 모든 걸 다 보여줄 필 요는 없다는 것을 / 또 다른 당신이 떠나고 배웠다 / 침묵이 위험한 만큼 / 거침없는 표현 또한 상처라는 것을 (중략) 어떤 사람을 만났 다 / 모든 걸 다 말하지 않았고 / 그릇에 사랑을 넘치게 남지 않았으며 / 일련의 순서도 지켰더니 / 제법 아름다운 사이가 되었다 / 이별 을 팔아 사랑을 한다” _떠나고 남은 것, P168~169 위 작품들을 읽으면서 정말 어쩔 수 없이 옛 추억이 떠오르더라. 23 년 인생, 아끼고 사랑하던 이들과 ‘엄청 많이’ 이별해본 건 아니지만 적어도 매번 가슴이 저릿한 헤어짐을 겪었다. 이유는 전부 달랐다. 내가 상처를 준만큼 되돌려 받기도 했고, 혹은 너무 다 내줘서, 때론 철없고 이기적이어서 나만 위했던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 안부 전화 를 귀찮아 하다가 생일날에 그의 관을 땅에 묻었다. 남들 다 만류한 과 CC 실패 후, 빛바랜 하트를 지웠을 때는 입학의 설렘에 그리 쉽게 넘어간 스스로를 탓했다. 모든 걸 다해 사랑했으나 결국 미련에 산 화돼 떨어진 자존감을 줍던 시절을 보낸 후에도 다시 그 사람을 잡 았을 때는 눈치 없이 쿵쾅대는 심장을 꺼내 땅에 던지고 싶었다. 아 마 과거의 내가 이 글을 봤더라면 조금 더 성숙하게 아픔을 넘길 수 있었을까? 다음에는 조금 덜 사랑하겠다고 다짐했을까, 아니면 이 별을 말한 이에게 눈물 어린 눈으로 첫 만남 때 미소는 뭐였냐고 따 졌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역시 이별을 팔아 새 사랑을 한다는 점 이겠지. 부디 그간 내 이별의 값은 호갱 수준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 결코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에게 ‘관계’란 대단히 복잡한 단어일 것이 다. 내가 현재까지 맺어왔고, 앞으로도 새롭게 꾸릴 관계 속에 놓인 모든 이들에게 책 뒷면에 쓰인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끝마치겠다. “ 다툼보다 사랑이 크기를, 미움보다 이해가 더 크기를, 이별보다 만 남이 크기를”이라고.
_ 김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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