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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면] 우리 모두 이별을 팔아 사랑을 한다에 대한 상세정보
[17면] 우리 모두 이별을 팔아 사랑을 한다
작성자 언론사 등록일 2023.04.06

박근호, 「전부였던 사람이 떠나갔을 때 태연히 밥을 먹기도 했다」, 필름, 2018


그날도 역시 별다를 것 없는 하루였다. 엄지손가락을 위로 까딱까딱 해가며 소셜네트워크 바다를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글 하 나를 읽었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었거든. 그 리고 가장 듣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 작가를 독자 로서 사모했다.

작가 박근호의 첫 문집, 「전부였던 사람이 떠나갔을 때 태연히 밥을 먹기도 했다」. 작가가 약 3년 전에 썼던 문장이 제목으로 재탄생했 다. 74개의 시, 산문 등이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여러 가지 감정들을 작가 특유의 문체로 파슬파슬한 종이 위에 녹여 냈다. 대부분 부드럽고 모나지 않은 단어들로 쓰여졌기 때문에 책장 을 술술 넘기며 조용히 음미할 수 있었다. 혹여나 나의 서평을 읽은 후 작가에게 관심이 생긴 학우가 있다면, 꼭 작가의 손글씨로 써진 작품들을 찾아보길 바란다. 왜냐하면 그는 분명 또박또박하진 않는 데 이상하게 가독성이 좋고 사람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묘한 글씨체 를 가졌기 때문이다. 나도 그것에 반하지 않았는가.

문집에 실린 모든 작품이 따뜻하지만 유독 내 마음에 좀 더 짙은 불 씨를 남긴 글이 3개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전부 이별에 대해서 이 야기하는 글인데,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시 사랑한다면 / 당신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 너무 가까이 닿은 살에 물집이 없도록 /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걸을 것 이다 (중략) 잊히지 않을 것 같던 사람도 결국 흐려질테니 / 당신이 떠난다고 울지 않겠다는 뜻이다” _만약에, P92~93

우리는 정말 맞지 않았고 / 인연 또한 아니었다는 말을 뱉는 / 이별 한 당신에게 묻습니다 / 그럼 그때 / 서로를 바라보며 / 아이처럼 웃 던 미소는 무엇입니까” _그때의 그 눈빛, P98

당신이 떠나고 배웠다 / 사랑하는 사이에도 / 모든 걸 다 보여줄 필 요는 없다는 것을 / 또 다른 당신이 떠나고 배웠다 / 침묵이 위험한 만큼 / 거침없는 표현 또한 상처라는 것을 (중략) 어떤 사람을 만났 다 / 모든 걸 다 말하지 않았고 / 그릇에 사랑을 넘치게 남지 않았으며 / 일련의 순서도 지켰더니 / 제법 아름다운 사이가 되었다 / 이별 을 팔아 사랑을 한다” _떠나고 남은 것, P168~169

위 작품들을 읽으면서 정말 어쩔 수 없이 옛 추억이 떠오르더라. 23 년 인생, 아끼고 사랑하던 이들과 엄청 많이이별해본 건 아니지만 적어도 매번 가슴이 저릿한 헤어짐을 겪었다. 이유는 전부 달랐다. 내가 상처를 준만큼 되돌려 받기도 했고, 혹은 너무 다 내줘서, 때론 철없고 이기적이어서 나만 위했던 적도 있었다. 할아버지 안부 전화 를 귀찮아 하다가 생일날에 그의 관을 땅에 묻었다. 남들 다 만류한 과 CC 실패 후, 빛바랜 하트를 지웠을 때는 입학의 설렘에 그리 쉽게 넘어간 스스로를 탓했다. 모든 걸 다해 사랑했으나 결국 미련에 산 화돼 떨어진 자존감을 줍던 시절을 보낸 후에도 다시 그 사람을 잡 았을 때는 눈치 없이 쿵쾅대는 심장을 꺼내 땅에 던지고 싶었다. 아 마 과거의 내가 이 글을 봤더라면 조금 더 성숙하게 아픔을 넘길 수 있었을까? 다음에는 조금 덜 사랑하겠다고 다짐했을까, 아니면 이 별을 말한 이에게 눈물 어린 눈으로 첫 만남 때 미소는 뭐였냐고 따 졌을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역시 이별을 팔아 새 사랑을 한다는 점 이겠지. 부디 그간 내 이별의 값은 호갱 수준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

결코 혼자 살 수 없는 인간에게 관계란 대단히 복잡한 단어일 것이 다. 내가 현재까지 맺어왔고, 앞으로도 새롭게 꾸릴 관계 속에 놓인 모든 이들에게 책 뒷면에 쓰인 말을 전하며 이 글을 끝마치겠다. “ 다툼보다 사랑이 크기를, 미움보다 이해가 더 크기를, 이별보다 만 남이 크기를이라고.


_ 김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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